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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불이 명품 특산품, 내가 제일 잘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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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여사의 소금 꽃
염부(鹽夫)의 딸
조선 제14대 왕인 선조가 세자 책봉을 앞두고 여러 왕자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슬기를 시험했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떡입니다."
"꿀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고기가 제일 맛있사옵니다."
선조의 질문에 왕자들은 여러 가지 음식을 예로 들었으나 정작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광해군의 대답이었다.
"소금이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고?”
“어떤 음식이든 소금이 들어가야만 제 맛이 나기 때문입니다.”
“과연 현답이로다!”
선조는 크게 만족했고, 형인 임해군과 여러 왕자들에게 짠맛을 제대로 보여준 광해군은 당당히 세자로 책봉됐다. 그런데 만일 그때 광해군이 다른 대답을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다소 비약하자면 소금이 만들어 준 세자라는 말도 과언은 아니다. 이렇듯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소금이다. 고대로부터 소금과 관련된 역사는 상당하며 우리의 염전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의 소금 관련 문헌은 매우 적은 편이지만, 고구려 때 소금을 해안지방에서 운반해 왔다는 대목이 '삼국지위지동이전'에 나와 있고, 신라나 백제에서도 해안지방에서 소금을 얻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고구려의 제15대 왕인 미천왕(美川王)은 신분을 속여 소금장수를 하며 지냈으며, 조선시대 어사 박문수는 백성들에게 소금을 생산하는 일자리를 만들어 흉년을 무사히 넘겼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염전에 관한 기록이 500여 건이 넘게 나온다. 소금을 만드는 주요 방식은 장작불이었다. 일단 바닷가 갯벌이 움푹 파인 곳이나 구덩이에 바닷물을 저장해 놓은 뒤, 햇볕에 수분이 증발돼 염도가 높아지면, 이 짠물을 다시 솥단지에 넣고 장작불로 끓인다. 이렇게 해서 만든 소금을 '화염(火鹽)' 혹은 '자염(煮鹽)'이라 부른다. 지금과 같은 천일염 방식은 일제 강점기 무렵 시작되었다.
자연환경이 좋은 비금도, 신의도, 증도, 도초도는 우리나라에서 천일염 생산지로 유명하다.
그중 증도의 태평염전은 단일 염전으로 국내 최대이다. 한국전쟁 이후까지 이곳은 바다였다.
전증도와 후증도로 나뉘어 있었으며 사람들은 물이 빠지면 징검다리를 건너 두 섬을 왕래했다.
그러던 것이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몰려오자 정부는 이곳에 둑을 연결하고 개펄을 조성해 염전을 만들었다.
“당시 피난민들은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단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배급받은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팔며 몸이 부셔져라 염전을 만드셨지.”
남의 집 처마 밑에 나무판대기를 덧대 살던 시절… 그 생생한 현장의 기억 앞에 오 여사는 절로 숙연해진다.
소금처럼 짠맛 쓴맛 다 겪으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지금은 아주 현대식인데? 어마어마해, 할머니!”
그저 광활한 염전규모에 감탄할 뿐인 ‘샐리’는 오 여사의 손녀이다.
그녀의 말대로 무려 140만평에 달하는 염전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할머니, 여기서 나오는 소금이 한국 천일염 생산량의 6%에 달한대… 연간 1만7,000톤이면 그 양이 얼마나 될까?”
“아마 엔젤레스마운틴 정도 되지 않겠냐?”
“에이, 좀 심하다…”
‘샐리’는 할머니의 허풍을 가볍게 넘긴다.
아무리 소금이 많다한들 엘에이 분지를 감싸는 로스엔젤레스 산맥만 하겠는가.
그러나 오 여사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피난민 2세대로 살아오는 동안 가난이라는, 때론 여성이라는, 급기야 인종차별이라는 거대한 소금 산을 눈물과 땀으로 녹여가며 버텨온 세월이다.
“할머니, 우리 소금 만드는 체험하러 갈까?”
“할 수 있겠니?”
“재미있을 것 같은데?”
나비처럼 가볍게 앞장서는 ‘샐리’의 뒷모습에서 오 여사는 자신의 과거를 본다.
오지지만 왠지 짠해지는 그런 마음… 염전 일에 지쳐 뼈가 녹는 듯한 고단함 속에서도 어린 자식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도 그러했으리라.
“으쌰… 으쌰…“
씩씩하게 대파(소금물을 미는 고무래)를 미는 ‘샐리’는 지치지도 않는다.
한(恨)의 세대가 아닌 요즘 젊은 아이들은 즐거움 속에서 일의 비전을 찾는다.
먹고 살기 위한 일이라기보다 좀더 즐겁게 살기 위해 하는 일인 것이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오 여사의 바람은 ‘샐리’가 정말 소중한 한 가지만은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 것이다.
소금은 절대 그냥 오지 않는다.
그녀의 기억은 구림염전 시절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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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 태평염전 -자료출처: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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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염 수확 체험 현장 사진제공=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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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1호 천일염전
구림염전
전남의 섬지역이 천일염의 메카가 된 데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래 강우량이 많은 신안은 일제 때부터 천일염을 만들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러다 평안남도 용강군 주을염전으로 징용을 갔던 비금도 출신 박삼만이 해방과 함께 돌아오면서 ‘구림염전’의 역사가 시작된다.
주을염전에서 염부로 노역하면서 천일제염법을 처음으로 접한 그는 해방이 되자마자 고향인 비금도 수림리로 돌아와 천일염 생산을 필사적으로 시도해 왔다.
“개펄을 막아불자고?”
“지 말을 믿어주시랑께요.”
“어느 세월에 저걸 다 막아?”
“아무리 소금이 귀하다 해도, 이라다 사람 잡것구만…”
개펄을 막아 염전을 만들자는 박삼만의 말에 대부분의 주민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바닷물을 커다란 솥에 끓이는 방법으로 소금을 만들어온 그들로서는 박삼만이 제안하는 천일제염법이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삼만은 자신이 있었다. 드넓은 갯벌과 해양성 기후의 해풍 등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이곳은 천일염을 생산하기에 안성맞춤인 환경인 것이다.
“일단 천일염만 생산되믄 우리 마을은 살게되야분당께요. 지가 머던다고 비싼 밥 묵고 빈말 하겄어요?”
“그 밥, 내가 사줬네.”
“예?
“그 비싼 국밥 내가 사줬다고…”
“그 말씀은…“
“자네 말대로 해봄세… 앞으로 같은 밥 묵어보자 그 말일세…”
“워따메! 참말이요?”
마침내 박삼만의 집념은 수림리의 유지인 손봉훈을 설득할 수 있었다.
1946년 박삼만은 손봉훈을 조합장으로 추대하고 천일염전 개발조합을 조직한다.
그리고 그 해 수림마을 앞 갯벌을 가로막아 시험염전을 만든다.
이 염전이 바로 민간차원에서 개발한 호남 최초의 염전이자 섬 지역 최초의 염전인 '제1호 염전'이다.
이후 구림염전의 소금제조방법이 신안군의 다른 섬까지 전해지면서 천일염전은 빠른 속도로 보급된다.
1948년, 450세대의 비금도 주민들이 '대동염전조합'을 결성하고 1백여ha가 넘는 염전을 조성해 냈다.
경기·인천 지역의 염전을 제외하고는 국내 최대의 규모였으며, 넓은 염전 지대의 저수지, 증발지(蒸發池), 결정지(結晶池), 해주(海宙, 鹹水溜)가 조화를 이룬 이곳은 이상적인 천일염전으로 꼽힌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비금 초등학교에 염전 기술자 양성소를 설치해, 이곳에서 배출된 기술자들이 인근 도서 지역과 완도, 해남, 무안, 영광, 고창, 부안, 군산 등지에 진출해 염전기술을 전수한다.
우리나라 염전 발전사에서 한 획을 그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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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비금도 대동염전 (등록문화재 제362호) 사진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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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날아다니는 섬
비금도
“그러니까 ‘플라이 이글’도 되고, ‘플라이 머니’도 된다구? 돈이 왜 날아다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아님 독수리가 돈을 밝혔나?”
비금도에 막 도착한 ‘샐리’는 신기한 듯 독수리상 앞을 서성거리며 이유를 달았다.
“전매제가 폐지되면서 소금 값이 폭등할 때가 있었단다.”
그동안 이어져오던 소금 전매제가 폐지되고, 5.16 군사 쿠데타 이후 화폐개혁 등이 시행된 1960년대 초의 일이었다.
“그때 비금도 염부들도 돈이 넘치다 못해 돈다발을 길에 흘리고 다닐 정도였지.”
그렇게 떨어진 지폐를 날아다니는 새도 물고 다닌다 해서 비금도(飛禽島), 돈이 날아다닌다 해서 “飛金島‘라 불렀다는 우스갯말도 있다.
“실제 우리 집 강아지 복구도 길에서 주운 지폐를 물고 왔지 뭐냐?”
“리얼리?”
“그럼, 정말이구 말고…”
오 여사는 몰라보게 달라진 비금도에서 잠시 상념에 잠긴다.
‘섬의 겉모습은 달라졌지만 모든 게 그대로야… 바람도… 하늘도… 그런데 그리운 사람들은 다 떠나고 없구나…’
염전의 추억을 기억하는 이, 얼마나 될까…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이곳에서 돈을 많이 벌었지… 덕분에 나도 뭍으로 나와 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이렇게 우리 샐리도 볼 수 있게 됐지 뭐냐.”
“그러니까 이 비금도 소금이 지금의 샐리를 있게 만든 거네?”
“그럼!”
“비금도야 고마워~~~ 소금아 고마워~~~ 오 마이 갓!“
바다를 향해 소리치던 ‘샐리’는 이내 울상이 되었다.
태평염전에서 제염 체험을 하느라 대파를 밀더니 뒤늦게 어깨가 아프다는 것이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염부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작업이 대파로 소금을 한군데로 모으는 작업이란다.”
“좀 말리지 그랬어?”
“그 신성한 작업을 언제 또 경험해 보겠니? 어쨌든 신기하지 않니? 바닷물에서 새하얀 소금이 나온다는 게…”
“그렇긴 해… 근데 할머니, 바닷물이 소금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걸려?”
“25일 정도 걸릴 게다.”
“25일 씩이나?”
“것도 날씨가 도와줘야해… 오죽했음 제염은 하늘과 동업하는 일이라 했겠니?”
“하늘과 동업을 해? 어렵다… 거긴 뇌물도 안 통할 텐데…”
뇌물도 통하지 않는 제염… 옳은 말이다.
가장 정직하고 바르게, 또 정성이 깃들지 않으면 좋은 소금이 오지 않는다.
그 과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소금 만들기는 염전 아래쪽 저수지에 바닷물을 받아서 가두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저수지는 1차적으로 바닷물을 저장하는 공간인데, 거기서 이물질을 걸러낸단다.”
틈틈이 염전 일을 도왔던 오 여사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소금 만드는 단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할머닌 뭐가 가장 힘들었어?”
‘샐리’의 질문에 오 여사는 주저 없이 대답한다.
“물 깎는 거…”
“물을 깎아? 어떻게?”
“염도를 올리고 수분을 증발시키는 과정을 그렇게 표현한단다… 물이 깎여 하얀 결정체인 소금으로 거듭나는 현상을 말하는 거지.”
“어렵다…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네.”
“수차 돌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단다…”
지금은 양수기로 대체했지만 그전에는 사람이 수리차를 돌려 바닷물을 퍼 올려야 했다.
증발지에서 한껏 염도를 높인 소금물은 '자고'라 불리는 물길을 따라 '소금밭', 즉 결정지로 이동한다.
이 때 '염판'에 짠물을 앉히거나, 올린다는 표현을 쓰는데 예전에는 수레차(물레방아)를 염부들이 직접 밟아 소금물을 끌어 올렸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그렇게 이 할미의 삶을 끌어올려 주었단다…”
눈만 뜨면 일하고, 일하기 위해 자고, 오 여사의 부모는 그렇게 자식이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통일이 되면 직접 만든 천일염을 꼭 고향에 가져가고 싶어 하셨는데…”
황해도 해주 출신인 오 여사의 부모는 이미 고인이 되었다.
온가족이 힘을 모아 LA 한인 타운에 세운 김치공장이 막 자리잡아갈 무렵, 앞서거니 뒷 서거니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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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금도 가산선착장 앞 독수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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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파작업 - 사진출처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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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금 가산 선착장 박삼만 동상 - 사진출처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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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의 꽃
비금도
“할머니, 정말 운치 있다! 원더풀!”
비금도 한옥펜션에서 하룻밤 묵게 된 ‘샐리’는 연신 사진을 찍어대며 감탄해 마지않는다.
“원래 한옥은 주변 풍광까지 한 몫으로 치는 거란다.”
모처럼 접한 한옥의 푸근함과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룬 주변 풍광을 충분히 즐긴 후 펜션으로 돌아 온 오 여사는 새우구이에 흠뻑 빠졌다.
“정말 맛있군요!”
펜션 안주인이 직접 구워준 새우 소금구이를 오 여사는 그야말로 게 눈 감추듯 먹어댔다.
“할머니, 괜찮아?”
‘샐리’가 걱정할 정도이니 벌써 여나 문 개나 쉴 새 없이 먹었나 보다.
워낙 입이 짧아 소식을 해 온 그녀에게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괜츰해라... 우리 천일염이 짱짱하게 받혀 준께 많이 잡사도 설사는 안 할 것이요.”
다부져 보이면서도 푸근한 인상의 안주인은 새우구이에 사용한 소금을 직접 운영하는 염전에서 생산한 거라고 했다.
“나도 뭍에서 시집와서 30년째 여기서 살고 있는디라, 음식 맛은 소금 맛, 섬 멋은 비금도! 두말 할 것도 없어라! 겨울에 오셨드라믄 섬초 까지 맛 볼 수 있었을 것인디, 째깐 서운하요… 제 철 되믄 부쳐 드릴 수도 있는디… 워메, 엘에이라? 겁나게 머요잉…”
재미교포라는 사실에 매우 애석해 하는 안주인에게 오 여사는 무한 친밀감을 느낀다.
소금 천하였던 그 시절의 그리움이 조금 달래지는 듯한 기분이다.
사실 그녀가 소식을 하게 된 것도 양식에 길들여지지 못한 토종 식성 때문이었다.
1970년 초, 가족 이민 차 미국에 도착해서 보니 무엇보다 소금이 달랐다.
천일염이 없는 미국에서는 미네랄이 전혀 없는 암염을 사용한다.
암염은 순도가 높은 염화나트륨으로 바닷물을 전기분해한 99.9%의 기계염과 성분이 비슷하다.
그래서 짜게 먹지 말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바위에서 캔 소금이랑 바다에서 나온 소금이랑 비교가 되간디? 또 우리 천일염은 미네랄이 풍부한 데다 간수는 쏙 빼고 먹은께 아무 걱정 없어라!”
독소로 여기는 간수를 말끔히 뺀 천일염… 함경도 해주 출신 부모가 남한 땅에 와서 피땀 흘려 만들어낸 그 소금이 여전히 오 여사를 반겨준다.
‘어머니, 아버지… 소금 꽃이 활짝 폈네요… 이렇게 소금이 왔는데, 보이시나요?’
다음 날 아침, 펜션 안주인을 따라 그녀의 염전을 둘러보는 오 여사는 울컥 눈시울이 붉어진다.
한 여름 오전 6시쯤 소금물이 결정지로 공급되고 나서 서너 시간 뒤면 '소금 꽃'이 피기 시작한다
하얀 소금 꽃들이 엉켜 살을 찌운 후에야 비로소 소금이 되는 것이다.
염부들은 이때를 두고 "소금이 온다.", "소금 꽃이 피었다.", 혹은 "소금 살이 찐다"라는 표현을 쓴다.
바닷물이 마침내 소금이 되는 절정의 순간, 오 여사에게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갔을지도 모르지만 ‘샐리’에게는 지금부터 시작일 것이다.
“샐리야… 네 이름의 의미를 아니?”
성년을 맞은 손녀에게 오 여사가 물었다. 사실 이번 여행은 비즈니스의 목적도 있지만 아이의 성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이루어진 것이다.
“왜 몰라? 할머니의 못 말리는 소금 사랑에서 빚어진 이름인데… 헤헤, 어차피 난 태어날 때부터 월급쟁이였어…”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샐리’의 이름은 샐러리맨의 줄임말로 실은 소금(salt)’에서 기인한다.
봉급생활자를 뜻하는 샐러리맨의 어원은 고대 로마 시대의 군인들이 임금의 일부로 살라리움(salarium·소금 배급 혹은 소금을 사기 위한 돈)을 받은 데서 유래한다.
“할머니… 이제 만족해?”
폭염으로 번지기 전, 잔잔한 미풍을 즐기는 오 여사에게 ‘샐리’가 물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그쪽 정서가 익숙할 법도 하지만 짠 소금처럼 가정교육을 엄격히 받은 그녀의 내면은 한국의 보통 손녀들과 큰 차이가 없다. 할머니를 친구처럼 대하는 듯한 이물 없는 말투도 그저 친근감의 의미일 뿐 무례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만족하다말다… 특히 우리 샐리가 곁에 있어서 베리, 베리 굿이다!”
오 여사는 ‘샐리’의 팔짱을 끼며 하늘을 바라본다. 볕 좋은 비금도의 하늘… 저 하늘과 동업하는 이들의 몸은 땅에 있지만 마음만은 높고 푸른 열망을 가득 담고 있을 것이다.
햇볕과 바람과 사람의 정성이 만들어 내는 신안천일염… 오 여사는 그날, 비금도 염전에서 김치공장에서 사용할 천일염을 대거 구입했다. 염부의 딸이었던 그녀에게는 비단 천일염뿐만 아닌 신안군 염전의 역사이자 부모의 유지를 새삼 확인하는 소중한 순간이기도 했다.
“소금이 오기 전까지 절대 방심하지 말라우…”
아버지는 어린 딸에게 바람도 햇볕도 믿지 말라고 했다. 순명하되, 포기하지 말 것…
그 신조 하나로 엘에이 김치공장의 CEO가 될 수 있었던 오 여사는 스스로 바람이 되고 빛이 되는 시간 동안 자신을 키워준 신안의 섬 마을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제 소금이 왔다.
그 소금으로 간을 한 대한민국 대표음식 김치로 백악관까지 사로잡을 야망은 ‘샐리’가 이루어 줄 것이다.
“잡사 봐~ 겁나 맛나!”
새참에 곁들인, 천일염으로 담근 김장김치를 쭉 찢어 입에 넣어주는 펜션 안주인과 그걸 제비새끼처럼 입을 쫙 벌려 받아먹는 ‘샐리’의 모습은 한 편의 CF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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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천일염을 이용한 새우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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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금도 대동염전에서 소금을 채염하는 부부
사진 출처: 최성환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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